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개변된 역사 (문단 편집) === 그 이후 ===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독일은 나치가 망쳐 놓았던 경제를 막대한 배상금, 그리고 경제 관료들의 개혁을 통해 극복했으며 프랑스와 석탄철강 공동협약을 체결하고, 유럽 공동 핵개발 기구 이후 유럽연합을 결성하며 유럽의 주도 국가로서의 위치를 확립했으며 아프리카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확립한 에티오피아, 그리고 중화연방공화국과 대한민국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영향을 바탕으로 핵개발, 인공위성 발사[* [[베르너 폰 브라운]] 등이 원래 독일인이고 원역사에서도 로켓의 시초가 되는 [[V2(로켓)]]을 개발한 독일이었던 만큼 원래 항공우주 기술이 발달한 나라였기도 했고 원역사의 [[우주경쟁]]도 독일로부터 [[페이퍼클립 작전|기술진과 연구자료를 획득한]] [[미국|미]][[소련|소]] 양국에 의해 촉발했듯이 이 세계에서는 충분히 독일이 먼저 인공위성을 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등 전 세계에서 주도권을 잡는다. 하지만 이런 황금기가 지속되면서 독일 내에서도 우월주의가 다시 등장하여 한 때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만한 사건(사할린과 중국 사이에서 일어난 미국/소련과의 갈등)에서 주정주의가 생겨날 정도였다.[* 현대 역사를 통해 비유하자면 [[포클랜드 전쟁]]을 보게 된 영국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걸 막기 위해서 디트리히가 다시 정계에 압박을 넣었어야 할 정도였고, 이 사건 이후 독일은 그 기세가 한 풀 꺾였다. 독일의 황금기는 시간이 흐르고 현대 시대에 이르러 국가 간 정보 교환이 늘어날 때 막을 내렸다. 자신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미국의 경제력이 독일을 넘어 전 유럽을 합쳐야 할 수준이라는 것을 싫어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배경으로 위기감을 느낀 독일은 현 체제 유지를 위해 폴란드, 핀란드 등 혈맹과 전략적 동반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연합, 중립에 가까운 영국과 돈독한 괸계를 유지하는 최대한 합리적인 외교 정책을 펼치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함께 2차 세계대전 초기를 보낸 핀란드, 폴란드와는 거의 혈맹에 가까운 우방이며, 한때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거리를 두고 있는 영국과도 둥글게 보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만능인 것은 아니라 주테텐란트를 강탈해간 체코슬로바키아나 루마니아 해체 과정이 공개된 이후의 루마니아와도 불편한 관계이다. 또한 스페인 전쟁에 대해서도 모르쇠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배상금을 내는 수준에서 퉁친 것도 비판받고 있다. 하지만 뭐라고 해도 세계를 세 개로 나누는 축의 하나로 자리 잡는 합리적인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즉 이 세계관의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트렌티노알토아디제]]+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폴란드의 [[포즈난]](포젠)과 [[그단스크]](단치히), [[실레시아]](상부 슐레지엔)을 아우르는 대국으로 거듭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